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뒤치닥 <투명드래곤>과 악의 본질
잡담/잡담2 2017. 2. 5. 00:19 |
리부트 5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뒤치닥 <투명드래곤>과 악의 본질
뒤치닥의 <투명드래곤>은 판타지소설계의 괴작이라 불리며 넷상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대중들은 2002년 조아라닷컴에 작품이 올라온 후부터 이 작품을 비밀리에 읽어왔으며 지금까지도 <투명드래곤>는 판타지계의 금서라 불리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금껏 인터넷에서 여러 만화나 게임에서 자주 패러디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투명드래곤>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저자가 당시 초등학생이었음을 암시하는 몇몇 증거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투명드래곤>은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해봤을 작품이지만 진지한 비평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판타지소설 작가인 이영도가 이 작품이 양산형 판타지를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썼다면 최고의 작품이라 말한 적 있다지만 출처가 불명확하다. 그의 작품을 둘러싼 컬트적인 인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기 위해 그의 작품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해야한다. 이 작품은 초등학생의 장난이 아니다. 도리어 인류를 파멸시키는 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있다. 더 나아가 악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고찰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연재 초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으나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보자면 괜찮은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작품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작품 자체로 보자면 클리셰가 많지만 신화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신화학자인 조세프 S. 캠벨의 분류대로 작품을 분석해보면 이 작품은 영웅의 탄생에서부터 영웅의 죽음까지 신화에 가깝다. 투명드래곤은 비범한 자이지만 투명하게 살아야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주인공은 심심해서 신을 죽임으로 자신의 타고난 소명을 거부한다. 거기서 투명드래곤의 모험이 시작된다. 중간에 타고난 조력자를 만나지만 그에 이어 험난한 숙적들을 만나 성장한다. 마지막에는 뒤크라는 최종악을 만나 그는 한계를 깨닫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자칫하면 양판소로 읽을 수 있는 이 작품은 헤라클레스의 여정을 그대로 반복한다. 기존 신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투명드래곤이 강하고 잘생겼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묘사한 점이다. 이러 식의 교묘한 문학적 장치가 투명드래곤을 절대악의 화신으로 형상화해냈다고 볼 수 있다.
투명드래곤이 주위에 폭력을 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심심해서’다. 심심하기에 그는 지구를 부숨으로 상대방에게 힘을 과시한다. 또한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을 파괴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는 그에게 폭력은 일상임을 알 수 있다. 그 수많은 것들을 파괴하는 와중에도 무언가를 부수는 일에 대해 죄책감은커녕 한 번도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 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투명드래곤은 자신이 순수한 목적으로 움직인다하지만 결국 악을 저지르고마는 인간 내면에 숨은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불리는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서구지성사의 맥락을 먼저 살펴봐야한다.
그녀의 사상은 인간이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는 스스로 악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에 의도치 않게 악행을 저지른다. 인류사에서 우리는 인간이 악하다는 증거를 여러 번 봐왔다. 그 악은 상식과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극한상황에서 나타난다. 가장 가까운 예로 나치즘과 일본 제국주의가 존재하며 가장 먼 예로는 마녀사냥이 존재한다. 그들은 명령과 시대의 패러다임에 복종했을 뿐이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자들로 남아있다. 그들은 예상외로 평범한 인물들이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전체주의 사회가 악을 발현시키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투명드래곤>은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을 고찰한 걸작이다. 일반 드래곤과 달리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드래곤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악의 평범성을 상징한다. 투명드래곤은 졸라 짱쎄서 누구도 상대할 수 없으며 신이나 마족까지 이겨버린다. 그는 크와아아아앙 울부짓으며 신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또한 어느 군단도 그를 파악하기 이전에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부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 죽음을 자초한다. 그의 몰락은 과도한 자기믿음에서 온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인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적 믿음은 이제까지 모든 것이 파괴될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까지 파괴될 수 있다는 것만을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통해 총체적 지배는 근본악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 악은 인간들이 벌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이제 그것은 처벌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근본악이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간의 모든 반응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으며, 어떤 분노도 이를 복수할 수 없고 어떤 사람도 이를 견뎌낼 수 없으며 어떤 우애도 이를 용서할 수 없으며 어떤 법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고 써놓았다. 이 맥락에서 투명드래곤은 그녀의 말을 반영한 소설로 보인다. 악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그의 소설은 탁월하게 악을 폭로한다. 소설에서 독자는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소설주인공들은 그가 어떤 짓을 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화자는 그가 졸라 쎈 이유를 보이지 않아서라고만 강박적으로 쓴다. 그 특성이 그를 강하게 만들며 그의 끝없는 승리를 만들어낸다. 뒤치닥이 악을 투명하다고 묘사하며 그것을 드러내며 묘사하는 이유는 악의 비현실성 때문이다.
1961년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공판 현장에 따라가 그 상황을 기록하며 평범한 가장이었던 아이히만을 지켜본다. 동시에 그녀는 평범한 한 가장이 어떻게 악의 화신으로 재탄생했는지를 서술하며 그는 “사고력의 결여”라 결론지었다. 즉,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심하지 않은 죄만으로도 악인으로 변할 수 있다. 투명드래곤이 ‘새’상에서 가장 강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의 존재를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음에서 나타났다. 투명드래곤으로 나타나는 악이라는 본성이 ‘저 너머의 세계’에나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은 우리 내부에 있으며 그것은 가히 비현실적이라 말할 수 있다. 아렌트는 유태인으로 세계 2차 대전을 눈으로 지켜봐온 사람이기에 이러한 문제에 민감했다. 그 악은 600만이라는 거대한 수의 유태인을 학살했다. 우리는 과거의 이런 일들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동물들도 저지르지 못할 법한 반인륜의 죄를 저지른 자들은 절대 자신이 악인지 모르기에 한나 아렌트는 이를 경고했다. 그녀는 슈퍼 초초초초초초초초액션 진짜 졸라짱쎈 최강급 비밀파워하이퍼 필살기로 존재했던 나치즘을 비판하며 사상을 펼쳐나간다. 그러나 1945년까지 누구도 멸망할 줄 몰랐던 히틀러 정권은 결국에는 무너졌으며 그 원인은 전체주의 그 자체가 가지는 모순에서 온다.
전체주의는 사상을 인간보다 우선시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을 무가치한 존재로 몰아붙인다. 독재자들은 우리를 꼭두각시로 만들어야만 우리를 복종시킬 수 있다. 그때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로 전락한다. 투명드래곤의 몰락은 여기에서 온다. 인간을 비인간으로 치부함으로 그들은 스스로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 어떤 유토피아가 실현가능한지 실험하기 위해 그들은 인간들을 조종한다. 그러나 그는 우주 군주의 제자인 보스버프를 받은 뒤크에게 죽는다. 이는 전체주의가 세계 전체를 지배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우주 군주”는 시민의 상징이다. 뒤크의 등장 이유는 투명드래곤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 작가의 후기에서 드러난다. 그는 우리에게 시민계급의 판단이 전체주의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줌으로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킁로아아아아앙랑 투명드래곤이 울부짖었다는 말이 유행하는 이유는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우리는 전체주의가 사라졌지만 전체주의의 잔재, 혹은 전체주의적 마인드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투명드래곤은 나치즘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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